목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가슴께에 작고 동그란 펜던트가 떨어지더니 조금 흔들렸다.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이가사키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의 목을 감싼 독사는 잠시 혀를 날름거렸다. 난 탁한 은색을 띠는 펜던트를 들어 올려 새겨진 문구를 읽어 보았다. 조그마한 원 안에 글씨들이 촘촘히 박혀 알아보기 어려웠다. Perhaps the confusion arises because life is not always what is seems. 서툰 발음으로 그 글을 입에 한 번 담아 보고는 줄을 뺐다. 아무렇게나 구겨 손에 넣은 채 한참을 걷고 보니 목걸이는 풀 수 없을 만큼 엉켜 있었다. 이번엔 가방 안에 넣었다. 달려 있는지도 몰랐던 구석 보조 주머니 밑바닥에 집어넣곤 지퍼를 잠갔다. 목걸이가 다시 빛을 받을 예정은 어느 앞날에도 없었다. 난 또 이 가방 구석에 작은 보조 주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것이고, 목걸이의 존재는 아득하니 지워지겠지. 그렇게 영원히 엉켜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손톱을 세우고 줄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없을 테니.
*
“미키, 힘들어 보이네. 위원회 일?”
“네, 아무래도 곧 있음 축제라서…부스 제작이다 뭐다, 예산 관리할 일이 많아서요.”
“그래도 틈틈이 쉬어. 머릿결도 많이 푸석해졌네, 손질 해 줄까?”
“아, 그럼 방과 후에 부탁드릴게요.”
타카코 언니는 나를 ‘미키’ 라고 불렀다. 나보다 2살 많은 편입생 타카코 언니는 종종 내 머리칼을 손봐주곤 했다. 그럼 끝나고 기다려 달라는 말을 끝으로 언니는 자기네 교실로 들어갔다. 확실히 요 며칠 내 위원회 일이 끊이지 않아 피로하긴 했다. 하기야, 행사만 있다 하면 모든 위원회들이 각자 열을 올리며 예산을 독촉하니 분주할 게 당연했다. 희끗희끗한 풍경에 눈을 비볐다. 축제만 끝나면 좀 괜찮으니까…. 바닥에 착 달라붙은 것 같은 발을 힘겹게 떼어내며 걸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 저 멀리 낯설지 않은 인영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안개가 씐 것 같던 복도가 조금씩 개이더니 곧 깨끗해졌다. 이가사키는 제 애완동물인 독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입매가 의도치 않게 삐뚤어졌다. 인사를 하려나. 차분한 발소리가 잇달아 이어지며 곧 녀석의 이목구비가 차분히 눈에 들어왔다. 연갈색의 동자가 점잖게 움직이더니 곧 시선과 시선이 맞닥뜨렸다. 이가사키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그저 눈길을 밑으로 옮겼다. 이내 두 몸이 교차하며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래로 향했던 창백한 시선이 나의 비어있는 목을 살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이가사키는, 좋게 말해 독특한 녀석이었다. 학교에 당당하게 애완용 독사를 데려오지 않나, 그 독사에 드는 비용을 자기 위원회 예산에서 뜯어먹지를 않나. 사실대로 말하면 이상한 놈이었다. 평범하게 소통하기엔 힘이 들 것 같은 유형이라고 할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가꿔온 자신의 세상 속에서 제 애완동물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놈이다. 그 세상이란 너무도 단단한 윤곽과 구조를 갖춰, 독과 가시로 이루어진 높은 담장을 넘어설 이는 잘 없었다.
- 중등부 3학년의 이가사키란 놈 있잖아.
- 아, 뱀이랑 등교하는 놈.
- 걔가 타무라한테 좀…그러는 것 같더라.
그러는 게 뭔지. 호감의 종류인지 불쾌의 종류인지 뭔지. 때때로 저런 말들이 들려올 때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 얘기가 가십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그다지 싫지 않지만 함께 엮인 상대가 이가사키인 건 별로였다. 잊을 만하면 저런 얘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유는 녀석 때문이었다. 가끔 하는 짓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그것 만 제외하면 꽤나 얌전하고, 차분한 녀석인데 유독 나에겐 그 둘이 섞인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가사키와 대화를 하면, 조용하고 한산한 분위기 밑으로 기묘한 공기가 발아래에 스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반말을 할 때도 있고, 호칭을 뚝 떼어먹곤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표정을 늘 똑같았다. 그 일관된 무표정이 주는 압박에 매번 지적할 타이밍을 놓쳤었다. 그래서 저런 소문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의 세상 속 동물들을 제외한 사람은 마치 이웃 세상 대하듯 하던 놈이, 타무라 미키에몬에겐 뭔가 다르니까. 좀, 이상하게 다르니까.
눈앞이 자꾸 번졌다. 어지간히 고생하긴 했나 보다. 몸이 영 버텨주질 않았다. 다음 이동 수업은 다른 건물이니까, 뜰을 가로질러 가야 하므로 서둘러야 했다.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회색 계단을 밟고 시멘트 길을 걷다 좌측으로 돌면 뜰이 나왔다. 꽃과 풀과 흙이 마구잡이로 엉겨 아이들은 대부분 옆 건물 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법을 택했지만 난 이 경로가 싫지 않아 꼭 이 길을 지났다. 그럼 실내화는 엉망이 되고, 운이 나쁘면 선생님에게 혼도 나겠지만 그래도, 왠지. 눈이 끔벅거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그렇다. 어깨가 쳐지고 손에 들린 필통과 교과서가 위태롭게 손끝에서 달랑거렸다. 오른쪽 발을 내딛고, 왼쪽 발을 움직이려 하던 찰나 무릎이 확 꺾이며 정강이엔 따가운 풀잎사귀들이 닿았다. 그제야 반쯤 졸던 정신을 바로 잡곤 왼발을 보니, 발등에 넝쿨이 걸려 있었다. 아. 무슨 꼴이람. 조심히 발을 빼내어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림자가 드리웠다.
“선배.”
곧 하얀 꽃들을 재워버릴 것 같은 목소리가 사늘히 울렸다. 고개를 들었다. 이가사키였다. 여전히 희멀겋고 기이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르는 말을 무시하고 몸을 바로 세우려 하자 놈은 내 어깨를 눌러 아예 주저앉혀 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 하면, 또 그 얼굴은 여전히 덤덤하고. 그러니 말문은 또 막혀버리고. 이가사키는 자기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곤 대뜸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하얀 손목엔 검은 띠가 묶여 있었다.
“사실, 언제나 이렇게 띠를 매고 다녀요. 쥰코도 그렇고, 독충들도 많이 키우니까요. 물렸을 때 독이 퍼지지 않도록 묶어주는 역할이에요.”
“……그래.”
“그래서 선배한테도 그 목걸이를 준 건데…독이 있으니까, 물리지 않으려고.”
“이해가 안 되는데.”
“제가 선배한테 물리지 않기 위한 목걸이였어요.”
선배는 독이 있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선배한테 물렸다고 이 띠를 동여매는 건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으니, 독을 잠재우는 방법을 택한 거예요. 그 목걸이로 독을 죽이려 했죠. 난 영문 모를 이가사키의 헛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녀석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옆에 있던 긴 풀줄기를 꺾어 엮었다. 곧, 목에 거슬한 것이 닿았다.
“이건 버리지 말아요.”
곧 가라앉을 것 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며 갔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가꿔온 자신의 세상 속에서 제 애완동물과 살아가고 있는 놈이다. 너무도 단단한 윤곽과 구조를 갖춘 세상이라, 독과 가시로 이루어진 높은 담장을 넘어설 이가 없는 곳. 이가사키는 종종 나를 그 위험한 담장 가까이까지 끌어오려 한다. 그 너머에 펼쳐진 따뜻하고 평화로운 들판에 초대할 생각을 결코 없어 뵌다만, 가시 넝쿨이 자물쇠를 두른 대문까지는 다가와 달라는 건지. 자그맣게 뚫린 문틈으로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고 있다. 따사로운 들판에 조금도 흥미가 없는 난 어서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뾰족한 가시와 위험한 독들이 난무하는 대문 앞에 붙들려 뒷걸음질에만 힘쓸 뿐이었다.